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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튤립 하나에 황소 한마리 값?
    경제 2024. 4. 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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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튤립 파동의 유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투기 과다 현상으로   최초의 투기 거품현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는 네덜란드의 황금 같은 시대였는데 네덜란드에 새롭게 들여온 튤립이 높은 가격에 팔리다가 거품화 이후 100분의 1로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이 대규모 거품은 1634년에 시작되어 1637년 2월에 극적으로 붕괴되었습니다. 튤립 파동은 역사상 첫 투기 거품으로 튤립 파동이란 단어는 현재 자산가격이 그 본질적인 가치에서 벗어났을 때 거대한 경제 거품을 비유할 때 쓰는 말로 자주 사용됩니다. 이 사건은 영국의 남해,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와 같이 근대 유럽 3대 거품사건으로 불립니다. 2020년대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비트코인 열풍을 튤립열풍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튤립 광풍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욕심과 광기로 인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사건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일부 사람들은 급격한 가격변동이 일반적인 사장 메커니즘에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경제대국이자 열풍과 거품화의 기수였지만 하층민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역사 

     

    터키에 파견된 유럽 황제의 대사였던 한 귀족은 이 꽃을 보고는 너무 예뻐서 싫증나도록 보고 싶어 했습니다. 튤립은 강렬한 포화 꽃잎의 색깔 때문에 당시 유럽에 알려진 다른 꽃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귀국하면서 그 꽃을 가져왔는데 식물학자들은 튤립이 네덜란드의 기후에 견딜 수 있도록 적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은 귀족들의 정원에 듬뿍 피어난 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꽃에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튤립은 빠른 시간내에 재배하기 어려운 종이며 꽃이 피기까지 삼 년 내지 칠 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그것이 결국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중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튤립 과열

    튤립이 인기를 얻으면서 전문 재배자들은 고급 품종의 뿌리에 대해 점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고,가격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튤립 논란이 네덜란드의 각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전해졌고 1634년에는 부분적으로 프랑스로부터의 수요의 결과로 투기꾼들이 꾸준히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튤립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것이 아니라 가격상승을 목적으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어떤 고급 뿌리 하나의 가격은 집 한 채 가격이랑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소 한 마리의 가격이 100 길더였는데 튤립 한뿌리가 4200 길더에 달할 때도 있었습니다.

     

    튤립으로 빠른 시간안에 엄청난 자산을 이룰 수 있다는 소식이 일반 백성들한테도 퍼지면서, 그들 또한 천천히 이 투기에 가담했습니다. 큰돈이 없는 사람들은 일단 수중의 돈으로 살 수 있는 정도의 뿌리를 구입했습니다. 그런 품종 또한 가격이 상승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선물 시장이 열리면서 최소한의  증거금으로 모든 거래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농민들, 제빵공 온 나라 시민이  이 놀이에 참여했습니다. 유럽에서 조금이라도 투기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튤립을 얻기 위해 네덜란드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에 엄청만 가격도 마다하지 않고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순간도 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거나 네덜란드에 튤립이 넘쳐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풍선은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많은 거래를 했던 사람들은 튤립 공급자로부터 자기한테 공급된 삼백여 종류의 튤립이 이미 시장에 있으며 이제 그것은 진귀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광풍의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풍선은 터져버리고 튤립 뿌리는 감자값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튤립 파동

    1637년 2월  가격이 갑자기 폭락했습니다.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빚을 진 사람이 몇천명에 달하고 모든 도시들은 혼란에 빠졌고 소송을 제기하고 있었지만 빚쟁이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아예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와 시청에서는 "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거래를 유보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모든 거래 계약을 무효시킴으로서 문제를 아주 간단하고 거칠고 신속하게  해결했으며 파산자와 벼락부자만을 남긴 채 튤립 광기의 시대는 끝나버렸습니다.

     

    그 이후 식물 전문 재배업자들은 그래도 계속 높은 가격의 튤립을 추구했고, 튤립 붕괴가 다른 산업에 대한 타격에 대한 역사적 자료도 크게 없습니다. 대신 정신문화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절제와 검소함을 위주로 한 칼뱅파의 도덕관이 되살아 나고 교회는 튤립 거래에 참가한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선전책자를 출간합니다. 로마 신화의 꽃 여신으로 알려진 튤립은 이제 탐욕스러운 꽃을 섬기는 미련한 자들을 비판하는 데 쓰입니다. 이 사건 이후 네덜란드인들이 튤립을 싫어했던 광풍도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튤립 거품경제에 관한 저서는 후에 알렌산드르 뒤마의 소설책 "검은 튤립"과 그림을 제외하고는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인 찰스 매케이가 1841년에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통해 세계에 소개된 이 책은 튤립의 거품을 대중의 집단적 광기로 인한 스캔들로 묘사하면서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10대 투자고전에도 뽑혔습니다. 최근까지 매케이가 묘사한 풍경은 대체로 세상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지만 E.A. 톰슨과 J. 드라자드가 당시에는 물가가 늘 안정되지 않았고 이를 군중들의 집단적 광기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관련 연구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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